Together Cats

'길고양이'가 "동네고양이"로 공존하기까지.

다섯 마리 아기 고양이들

[3편] 또 다른 아기 고양이가 소풍을 떠났어요.

하기_하루를 기록하다 2020. 10. 27. 15:35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가 새벽 1시에 끝나도 급식소에 밥만 채우면 돼서 늦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여유로웠다. 하지만, 급식소에서 밥을 줄 때 한 번씩 술에 취하신 분들이 주위를 맴도시거나 밥을 채우는 나를 빤히 쳐다보셨던 분들도 계셨다. 어두컴컴한 새벽이지만 부담스러운 시선은 느껴졌고, 가끔 동생이랑 갔지만 거의 혼자여서 좀 무섭긴 했지만 어차피 밥만 채워놓고 곧장 집으로 가서 괜찮았다. 하지만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났고, 아프다는 걸 안 이상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살아도 아프지 않게 같이 살 수 있게 건강했으면 하고, 아픈 아이들이 동네에 있으면 다른 동네 아이들에게 옮길 수도 있다. 만약에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라도 돈다면 나는 이겨낼 자신이 없다.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밥에 가루약을 타서 먹이고 안약도 구해서 넣어주었다. 아기 고양이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빨리하고 급식소에도 밥을 채워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남은 6마리의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자세히 파악하는 시간까지는 여유롭지 못했다. 건강 상태 파악은 물론, 누가 밥을 많이 빨리 먹고 누가 밥을 적게 천천히 먹는지조차 파악을 못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손님이 적어서 급식소에도 들리고 아기 고양이들에게도 갔다가 집에서 밥 먹고 나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급식소에 밥도 채우고 오래간만에 깨끗하게 정비도 했다. 급식소에서는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보인다. 그 날따라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곳 근처에서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거처럼 보였다. '아기 고양이들 밥 주느라 바쁘시네' 하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 날, 나는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나.

그 날, 나는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곳에 간 게 어쩌면 아기 고양이들에게 있어서 다행인 건가.

 그 날이 바로 아기 고양이의 잘린 뒷다리가 발견된 지 이틀 뒤인 2020년 10월 2일. 장소는 잘린 뒷다리가 발견된 아파트 단지 내의 자전거 보관함. 나는 그곳에서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를 봤다. 자전거 보관함에서 나무의 아기 고양이 중 턱시도 한 마리가 팔다리가 뻗어있는 상태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 사건 역시, 최초 발견자는 잘린 다리를 발견한 고등학생분(이하 최초 발견자)으로 동일했다. 최초 발견자분께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셨고 최초 발견자분께 전화가 오는 모습도 봤다. 일이 있으신 거 같아, 일단은 가시라고 했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왼쪽(2020년 10월 2일 18시 6분), 오른쪽(2020년 10월 2일 18시 10분)

 우리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준 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고양이 별로 떠난 아이들이 몇 마리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전혀 없다고는 할 순 없다. 거의 다 컸는데 사라진 경우도 종종 있다. 정 줬는데 갑자기 사라져서 마음에만 둔 아이들만 몇 마리인가. 그런데 죽어가는 걸 눈 앞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몸은 차가워지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움직이는 아이를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생각나는 사람은 연대 대표님(이하. 대표님)과 동네 베테랑 집사님(이하. 베테랑 집사님) 뿐. 전화를 받아주셨지만 당황한 나는 사건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했고, 아이의 개월 수도 말씀드리지 않고 죽어가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씀드렸다. 대표님께서는 며칠 만에 똑같은 장소에서 두 마리나 죽은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곧이어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곧 나에게도 해를 가할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생활불편신고 앱에 사진과 함께 민원 신청하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다시 전화해달라고 하셨다. 대표님보다 먼저 전화드렸는데 근무 중이셔서 전화를 받지 못하셨던 베테랑 집사님께서 전화가 왔다. 베테랑 집사님께서는 병원 갈 비용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혹시 모르니 설탕물 급여해보시라고 하셨다. 가까운 마트에서 설탕을 사 와 설탕물을 만들어 먹이는데 동네 활동가님(이하. 활동가님)께서 오셨다. 활동가님께 설탕물을 부탁드리고 112에 신고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데로 동네 고양이 밥 주는 사람이고 며칠 전에는 아기 고양이의 잘린 뒷다리가 발견되었고 지금은 같은 장소에 또 다른 아기 고양이가 죽어있다. 고양이들 밥을 주는 사람으로서 고양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곧 나에게도 일어날 것 같다. 내가 불안해서 이 동네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신고했다. 경찰분들이 출동했지만, 길에 사는 아이들이고 저번에 다리가 잘린 아이도 그렇고 죽어가는 아이도 그렇고 사람이 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사건 접수는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동네 주민 한 분께서는 잘린 다리를 사진으로 보셨는데, 새끼 고양이가 작으니까 사람들이 자전거를 꺼내다가 바퀴에 잘렸을 수도 있고 죽고 있는 저 고양이는 며칠 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다산 콜센터에 전화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옆에 계시던 다른 한 분은 냄새도 너무 나니까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동네 주민들 말씀에 경찰분들도 아기가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시며 가셨다. 경찰분들이 오셨다 가셨지만 정신은 더 혼미해졌다.

 대표님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말씀드리기 위해 다시 전화드렸다. 설탕물과 경찰분들이 오셨던 일을 전해드렸다. 대표님께서는 아이의 상황이 어떤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설탕물이 아니라 추석휴무고 저녁이니까 24시 병원을 가야 하는데 병원비 괜찮은지 물어보셨고, 병원비가 부담스러우시다면 현관에서라도 따뜻하게 해주는 게 어떠시겠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본인은 어디까지 책임지고 싶은지, 그걸 염두에 두지 않고 지금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긴다면 본인은 지금처럼 당황할 거라고. "당사자"가 다시 사건을 접수하고자 단체에 공론화하면 탄원서도 써서 신고 접수하게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현수막이라도 걸어둘 수가 있다고 하셨다. 그게 단체의 일이고 "당사자"가 어디까지 할 지에 달려있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정말로,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면 되냐요"라고. 대표님은 "네,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단 공론화부터 하시고 또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라고 통화는 끝났다.

 통화가 끝나고, 그 아이를 안으며 계속 생각했다.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전 생각해 둔 원칙, "혼자서 살지 않는 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가지 않기". 죽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원칙을 어기게 되면 계속 고양이들을 들일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간들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기에 구조는 하되 곁에 계속 있어주지는 못한다. 만약 단체의 힘을 얻어 사건 접수가 됐다 한들 당사자인 나는 힘도, 시간도, 여유도 없다. 머리로 복잡한 생각을 하는 순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분께서 수건과 휴지를 건네주셨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니 수건이라도 싸서 상자에 넣어두는 게 어떨까요, 휴지로 눈물도 닦으세요. 괜찮아요."라고 하셨고 수건으로 아이를 감싼 다음 상자에 넣어두고 집으로 갔다. 가게를 오래 비워서 그런지, 대표님과 베테랑 집사님과 통화하는 사이사이에는 손님 전화가 많이 왔었다. 전화드리니 언제 오실 수 있냐고 하시길래 바로 갈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곧장 갔다.

일곱 마리에서 두 마리는 돌아올 수 없는 소풍을 떠났고 다섯 마리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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